ACC 사운드 랩 2026 – 듣기의 미래 : 기계
(2026)
기계는 더 이상 우리가 부리는 도구가 아니다. 상시 대기하는 마이크와 카메라, 네트워크와 센서로서, 기계는 우리가 그 안에 거주하는 환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환경은 쉼 없이 듣고 있다.
음성을 인식하고, 음악을 추천하고, 소음을 가려내고, 데이터를 거두어들이며—기계는 이미 도처에서 듣는다. 그렇다면 묻게 된다. 기계가 하는 이 일을 ‘듣기’라 부를 수 있을까. 인간만이 듣는 존재라는 오랜 믿음은 어디까지 유효한가.
2026년 ACC 사운드 랩 ‘듣기의 미래’는 ‘기계’를 주제로 이 질문에 다가선다. 도시(2023), 장소(2024), 몸(2025)을 지나온 다년 연구가 올해 향하는 곳은, 인간이 아닌 존재가 듣고 말하기 시작한 자리다. 다섯 명의 연구진은 청취를 타고난 감각이 아니라 기술과 문화가 함께 빚어낸 실천으로 바라보며, 기계의 듣기를 인간 듣기의 열등한 흉내가 아니라 다른 논리로 작동하는 또 하나의 듣기로 읽어낸다.
그 사유는 두 편의 작품으로 모인다. 〈모서리 없는 것이 모서리로 접힌다〉는 도시 곳곳에 놓인 누에고치 장치들이 세계의 소리와 풍경을 거두어 한 점으로 모아들이는 여정을, 점점 작아지는 네 겹의 공간으로 짓는다. 〈12,080Hz〉는 마이크와 스피커가 서로만을 듣는 기계들의 교신, 그리고 그 사이에 인간이 끼어드는 순간 듣는 자와 들리는 자가 뒤바뀌는 장면을 소리로 세운다.
기계가 세계를 거두는 방식, 기계가 서로 주고받는 방식. 두 작품은 인간의 귀를 잠시 내려놓은 자리에서,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연구진: 김대희, 김예지, 이강일, 정혜원, 한진협
모서리 없는 것이 모서리로 접힌다 The Edgeless Folds into Edges, 2026
3D 프린팅 구조물, 스트리밍 모듈, 32.2채널 입체음향 사운드, 알루미늄 프레임, 정육면체 박스, 가변 설치
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에서 끝나는지 정확히 나누기 어렵다. 우리는 귀로 들을 수 있는 부분을 하나의 소리로 받아들인다. 카메라와 마이크도 이어진 세계의 일부를 골라 기록한다. 이때 생기는 경계가 제목의 ‘모서리’다. 2026년 ACC 사운드 랩은 기계가 세계를 보고 듣는, 그렇게 모서리를 얻어 가는 과정을 따라간다. ACC 곳곳에 놓인 다섯 개의 누에고치 모양 설치물에는 카메라와 마이크가 들어 있다. 이 장치들은 주변의 모습과 소리를 계속 모으고,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수집된 소리와 이미지는 데이터로 바뀌어 입체음향실로 보내진 뒤, 다시 소리와 빛으로 나타난다. 그렇게 나타난 것은 잠시 머물다 사라지고, 어디에도 저장되지 않는다. 세계는 기계를 지날 때마다 새로운 형태와 모서리를 얻는다. 하지만 기계가 스스로 듣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다. 그 뒤에는 정보를 모으고 이용하려는 인간의 의지가 있다. 동시에 그렇게 만들어진 기계는 다시 인간이 보고 듣고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다. 인간과 기계는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움직인다고 말하기 어려울 만큼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계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기계와 데이터를 거치며 계속 접히고, 그때 생긴 새로운 모서리는 우리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다시 만든다.
12,080Hz, 2026
샷건 마이크, 초지향성 스피커, 3채널 프로젝션, 4.1채널 사운드, 가변 설치
서버실에 소리를 채집하러 갔다. 기계의 사고에는 소리가 없다. 연산하는 회로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그 열을 식히는 소리, 팬과 공조가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의 순환하는 몸의 소리다. 그 몸소리를 녹음하던 중, 팬과 공조음 사이에서 가느다란 한 음이 짧게 울렸다. 12,080Hz. 누가 부른 적 없는데 기계가 홀로 낸 소리 같았다. 마이크와 스피커가 마주 서면 피드백이 인다. 인간에게는 견디기 어려운 소음이지만, 서로의 소리만 듣고 하나의 주파수로 치닫는 두 기계에게는 순수한 교신이다. 여기서 듣는 자는 기계다. 마이크는 스피커를 듣고, 스피커의 소리는 다시 마이크로 돌아간다. 인간은 그 사이에 낄 자리가 없다. 인간의 몸이 마이크와 스피커 사이에 들어서면 교신은 끊긴다. 기계의 소리를 소음이라 여겨 온 인간이, 이 순간에는 거꾸로 교신을 어지럽히는 노이즈가 된다. 그리고 경로를 막은 그 몸을 마이크가 되받는다. 끊는 것과 들키는 것이 같은 동작이다. 방금까지 듣던 자가 이제 들리는 자가 된다. 인간이 물러나면 두 기계는 다시 서로를 향하고, 교신이 돌아온다. 누가 듣고 누가 들리는가는 그 사이를 오간다. 세 면의 스크린이 이루는 방은 기계의 몸속이다. 밖에서 일어난 개입은 그림자가 되어 방 안쪽에 맺힌다. 관객은 그 안에 앉아, 다른 사람이 기계의 교신에 끼어들고 물러나는 모습을, 주도권이 오가는 장면을 지켜본다. 듣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의 안에서, 이번에는 인간이 기계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