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rm-up Exercises to Restore a Sense of Connection

연결 감각 회복을 위한 준비운동

for haegeum, piano, percussions, electronics and 8-channel sound projection


2022 인천아트플랫폼 레지던시 창제작 프로젝트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우리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 지 어느덧 3년이 되어간다. 마스크를 쓰게 되며 소통의 어려움을 겪었고,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관계의 단절을 경험했다. 상황이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불투명한 미래로 여전히 가슴 깊이 긴장감이 내재되어 있다. 그간 경험한 단절을 온전히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해 연결의 두려움을 극복하며 새로운 일상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운동을 하고자 한다.

Credit
창작: 김대희
연주: 김대희, 김선기, 김예지, 손일훈
조명 디자인: 이영욱
인쇄물 디자인: 임선녀
영상 기록: 윤관희
지원: 인천아트플랫폼


Performed at
Incheon Art Platform, Incheon, KR, 2022


Review

듣기의 공동체
신예슬

김대희의 〈연결감각 회복을 위한 준비운동〉을 위한 공연장에는 세 개의 원이 마련되어 있었다. 가장 작은 원은 음악가들의 자리. 중간 원은 그들을 둘러싼 관객의 자리, 가장 큰 원은 여덟 개의 스피커의 자리였다. 둥근 무대, 둥근 객석. 둥근 소리의 연결망. 보이지 않는 영역에 숨을 수 있는 일반적인 객석과는 달리, 이런 둥근 자리에 앉는 일은 내가 노출되어 있다는 생각 때문에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적당히 마주볼 수 있어서 그런지 그 자리에 조금만 익숙해지면 옆에 앉은 사람들과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끼게 되곤 했다.

종이 울리자 가장 바깥의 원에 놓여있던 여덟 개의 스피커가 조용히 말하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였지만, 그들이 언급하는 것은 거의 모든 인류가 지난 3년간 집중해왔던 팬데믹에 관한 이야기로, 어투는 다분히 일상적이고 편안했다. 꼭 당장 가까운 친구를 만나 코로나 때 어땠냐는 질문을 던졌을 때 들을 수 있을 만한 말들이었다. 한창 규제가 심했을 때 식당에 가서 일행이 아닌 척하며 밥을 먹어야만 했던 기억, 대외 활동 자제가 요구되어 사람들을 많이 못 만나게 됐지만 사실은 그게 꽤 좋았다는 이야기, 한편으로는 나라가 이렇게 4인 이상의 사람들더러 만나지 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는지 의문스러웠다는 기억 등, 많은 통제와 제약이 갑자기 우리의 일상에 끼워졌던 그 지난 이야기들은 익숙하면서도 생경했다.

다른 목소리로 말해졌을 뿐, 사실 우리 모두가 거의 비슷하게 느꼈던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틈이 없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느꼈다. 매일같이 상황이 갱신되는 바람에 눈앞의 상황에 적응하기에 급급했고, 전염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바짝 긴장했던 날들이었다. 그 과정 속에서 생겨난 변화들이 얼마나 낯선 것들이었는지, 순식간에 얼마나 많은 것이 단절됐었는지, 그 사이에서 또 어떤 의외의 삶의 형식이 생겨났었는지 등,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시 지난 몇 년의 기억을 되뇌었다. 이제는 팬데믹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들어도 특별히 놀라게 되지는 않지만,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어떤 마음이 남아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피커들이 들려주는 팬데믹에 관한 증언들은 하나둘씩 중첩되며 잠시 군중의 목소리를 이루다가, 다시 한 사람의 말로 되돌아왔다. 문장을 완전히 정확하게 옮겨적을 순 없지만, 핸드폰은 단절을 전제로 한 도구지만 연결을 위한 도구라는 이야기였다. 단절 속 ‘연결의 신호’처럼 들리는 핸드폰 진동음이 들린 뒤, 다시 종이 울렸다.

좋은 대화를 닮은 즉흥

이야기가 멈추고, 가장 안쪽 원에서 음악가들의 연주가 시작됐다. 종소리에 이어 드럼의 심벌 사운드가 단발적으로 들려오다가, 서서히 밝아지는 조명과 함께 해금과 건반도 짧은 음형들을 연주하며 동참했다. 김대희와 김선기, 김예지, 손일훈 네 사람은 각각 랩탑과 드럼, 해금, 건반을 각자의 악기 삼아 조심히 소리를 내보고, 내 소리와 다른 소리가 어떻게 맞물리는지 세심히 들었다. 서로의 대화 패턴을 잘 알고 그들의 선택과 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는 동료들이 함께해낼 수 있는 연주라고 느껴졌다.

그들의 즉흥이라는 형식 아래 음악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큰 흐름은 공유하더라도 당장 다가올 미래의 음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즉흥 연주에서 그 특유의 시간 감각은 다음 소리를 알고 있는 음악을 연주할 때와는 무척 다르다. 과거와 현재, 미래로 쭉 뻗어있는 안전한 흐름을 모두 떠올리며 한 부분을 연주하는 것과 달리, 즉흥은 끊임없는 ‘현재의 갱신’으로 음악을 만들어가기 때문이다. 즉흥 연주에서 현재는 가장 예리한 한 점으로 수렴된다. 한 끗 차이로 흐름이 완전히 뒤집힐 수 있는 상황 속에서 음악가들은 최선을 다해 현재의 소리에 집중한다. 그것은 안전하기보다는 위태롭다.

적지 않은 자유 즉흥 연주에서 내가 주로 경험해온 것은 극도로 강조된 현재의 감각, 그리고 패턴을 감지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정적인 구조가 형성되었을 때 그것을 계속해서 빠르게 무너뜨리는 움직임이었다. 어떤 즉흥 연주는 멋진 혼란을 만드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 것 같기도 했다. 또 다른 즉흥 연주는 그야말로 ‘타이틀 매치’ 같은 경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서로 얼마나 더 큰 힘을 다룰 수 있는지 대결하듯 연주를 이어가거나, 상대를 당혹스럽게 할만한 과제를 던져주는 연주도 있었다. 음악 그 자체를 만드는 것보다는 서로가 가진 ‘즉흥이라는 행위’에 대한 역치를 시험하는 듯한 연주도 더러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날 네 음악가가 들려준 연주는 그런 종류의 즉흥이 아니었다. 여기서 즉흥만큼 중요한 것은 그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듣고 대화를 나누는 방식’인 것 같았다.

한 음악가가 하나의 소리를 내면, 다른 음악가는 그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될 수 있는 동종의 소리를 찾았다. 대체로 비슷한 음색이나 유사한 빠르기의 리듬을 연주하거나, 가까운 음역에서 소리를 내보는 식이었다. 상대의 소리를 듣고 이해했다는 표시처럼 들렸던 이런 응답 이후, 네 음악가는 그 안에서 서로의 역할을 서서히 잡아가는 듯했다. 비슷한 리듬에 모여있던 이들은 지속음을 연주할 사람과 더 빠르고 복합적인 리듬을 연주할 사람으로 나뉘었고, 유사한 음색을 내던 이들은 멜로디를 연주할 사람과 두터운 음향을 채울 사람으로 나뉘었다. 그 과정에서는 반복가능한 패턴이 생기곤 했다. 각자의 롤과 패턴, 그리고 그 안에서 각자의 소리를 다듬어가는 시간은 여러 사람이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좋은 소재를 찾아내고, 그걸 발전시켜나가며 서로 하나로 모일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가는 것 같았다. 그건 ‘조화를 위한 즉흥’이라 부를 만했다.

어떤 부분에서 이들은 안정적인 합주를 만드는 데 주력하는 듯했지만, 물론 그들이 매번 공평한 대화를 이루기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재즈의 즉흥에서 각 악기에게 솔로를 주듯 어떤 부분에서는 해금이, 다음 부분에서는 드럼이, 그다음에는 랩탑이, 마지막에는 건반이 마치 협주 속의 독주처럼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풍성하고 예리한 해금의 음향, 복합적이면서도 탄성 좋은 드럼의 리듬, 그야말로 무궁무진한 소리를 불러오고 합성할 수 있는 전자음악, 그리고 주로 화성의 언어를 활용하며 음악의 무드를 유연하게 바꾸어갔던 건반까지. 네 음악가는 공통의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한명 한명의 이야기를 조용히 듣곤 했다. 그렇게 서로의 소리를 듣고 쌓아가던 시간을 충분히 가진 뒤 음악이 멈췄고, 마지막 종이 울렸다. 세 번째 타종과 함께 세 개의 원 위에 자리하던 사람들도 그곳에서의 경험을 마무리했다. 바깥에서 서서히 안쪽으로 향하며 크고 작은 원들을 비추던 조명도 이제는 모두를 환히 비췄다. 서로 다른 방식으로 듣는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여러 차원의 듣기를 끝마쳤다는 느낌이었다.

연결감각

공연장을 나와 엽서에 적힌 공연 제목을 차근히 곱씹었다. ‘연결감각 회복을 위한 준비운동’. 꽤 조심스러운 태도를 지녔던 이 공연에서 형성한 것이 어떤 연결감각이었을지 곰곰이 되뇌었다. 거의 미동 없이 제자리에 앉아있던 내가 한 일이라곤 스피커 속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를 듣고, 네 명의 음악가가 소리를 주고받으며 합주하는 장면을 듣고 보는 것뿐이었지만, 나는 녹음된 목소리의 말들과도, 네 명의 음악가와도 그리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이해하게 됐다. 나는 목소리들과 같은 경험을 했고, 음악가들이 서로의 음악을 경청해서 듣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즉 연주가 아닌 그들의 ‘듣는 모습’으로부터 나와 그들 사이의 연결을 느꼈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지만 우선은 타인의 소리를 꼼꼼히 듣는 그 모습에는 선명한 존중이 배어 있어서, 그것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쩐지 안전함을 느끼게 되곤 했다. 아마도 그들의 음악을 들으며 충분히 듣는 사람만이 마련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의 자리를 떠올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야기가 음악으로 넘어가던 가장 중요한 전환점에 놓여있던 것은 단절이자 연결의 도구였던 핸드폰의 진동음이었다. 여러 신호와 통신과정을 거쳐 물체의 작은 떨림으로 이어진 소리는 결국 네 음악가가 일련의 소리다발을 엮어가며 만들어내는 대화로 연결된다. 서로를 부르는 작은 진동을 만드는 것, 그리고 서로의 진동과 소리를 듣고 그로부터 연결망을 쌓아가는 일. 〈연결감각 회복을 위한 준비운동〉은 매일 같이 경험해온 그런 일상 속의 작은 연결점을 관찰하고, 그런 연결고리들을 아주 오랫동안 조용히 경청하며,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 엮어온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다정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실제로 얼마나 연결됐는지, 그 결과를 가늠해보는 일은 아마도 불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는 타인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함께 연결되려는 몸짓을 보이는 것만으로도 어떤 작은 연결이 성사되는 것이지 않을까. 서로가 손을 정확히 맞잡을 때뿐만 아니라 누군가 내게 내민 손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모종의 연결감각을 느낄 수 있듯이. 어떻게 보면 너무나 당연할 수도 있는 나와 너를 연결해 우리로 만드는 일이 그렇게 단순하고도 좋은 것이다.

신예슬 Yeasul Shin
비평가, 헤테로포니 동인. 음악학을 공부했고 동시대 음악을 구성하는 여러 전통에 질문을 다룬다. 『음악의 사물들』을 썼고 종종 기획자, 편집자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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